물에 젖은 솜털
가까웠던 사람이 멀어진다. 나란하던 삶의 어깨가 조금씩 떨어지더니 어느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특별한 일이 생겨서라기보다 특별한 일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맞았다가 안 맞게 되었다기보다, 조금씩 안 맞는 마음을 맞춰 함께 있는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쪽이 싫기 때문이 아니라 저쪽이 편안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때 가까웠으므로 그런 사실을 털어놓기가 미안하고 쑥스럽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다 만나면 서로 속내를 펼쳐 보이는 대신 겉돌고 맴도는 이야기만 하다 헤어진다. 삶이 멀어졌으므로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지 못한 채 멀어진다. 실망과 죄책감이 찾아오지만 대단한 잘못을 한 건 아니므로 쉽게 잊는다.
그런 일이 반복되고, 어느 날 무심하고 냉정해진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새삼스럽게 돌아가기에는 이미 멀리 와버렸다.
삶이란 둘 중의 하나,
이것 아니면 저것.
그런 것들이 쌓여 운명이 되고 인생이 된다.
나는토끼처럼귀를기울이고당신을들었다
이쪽이 싫기 때문이 아니라 저쪽이 편안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사실을 털어놓기가 미안하겠지, 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래 전에 짐작하고 있어서, 내가 인연을 쉽게 생각하고 냉정한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그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먼저 놓아준 것,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라고 먼저 등 돌려준 것인데, 나에게 사랑을 고했던 이들에게, 그리고는 마음의 간격을 벌리고 멀어진 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부디, 마지막 배려로 작별을 선수친 나를 너무 책망하지 않기를.
나는 무심히 흘러갈 것이니, 다들 안녕하기를.